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인간은 타인의 감정을 흉내 내는 존재다
프랑스의 한 저명한 학자가 독일에서 열린 철학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살아있는 스피노자가 있다." 이 살아있는 스피노자, 알렉상드르 마트롱(Matheron)의 책《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한국의 두 스피노자 연구자들에 의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에 프랑스 학계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지금은 세계적인 반향과 함께 확장되고 있는 '스피노자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그 주요한 흐름을 결정지었던 연구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은 언뜻 보기에 모순되어 보일 수도 있는 특징들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동시에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기하학적 방식에 따라' 논증되고 있는 스피노자 《윤리학》의 구조를 어떤 의미에서는 스피노자보다 더 엄밀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살아있는 스피노자'라고 불릴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반대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윤리학》에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추상적인 언어들이 어떠한 구체적인 삶의 맥락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이 책에서 엄밀성과 구체성이라는 어려운 조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조화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그의 정치적 저작들인 《신학정치론》이나 《정치론》을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해석의 중심에는 스피노자의 감정이론(theory of affects)이 놓여 있다. 이 책이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에서 그것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각 사물은 자신의 존재 역량에 따라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윤리학》, 3부 정리6). 이는 스피노자의 정념론, 정치학, 도덕론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마트롱이 인용하고 있는 문장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피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처럼 간주되기도 하는 '코나투스'(conatus) 개념이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연적 경향'으로서의 코나투스는 곧 '욕망'에 다름 아니며, 바로 이것에 기초해서 스피노자는 《윤리학》 3부에서 인간들에게서 어떠한 원리와 메카니즘을 통해 감정들이 생성되고 소멸되는가를 논증한다.
우리가 '감정의 물리학'(physics of affects)으로도 부를 수 있는 스피노자의 이 감정이론에 기초해, 마트롱은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및 정치적 관계들의 구성의 문제를 해명한다. 스피노자 감정이론을 특징짓고 있는 것은 '감정모방'의 원리이다. 인간은, 자신과 유사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다른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을 모방한다. 우리는 우리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을 보면서 그와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마트롱이 스피노자의 이 원리에서 이끌어내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국가 혹은 시민사회는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계약이 아니라 바로 이 감정모방의 메커니즘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스피노자 철학에서의 개인과 공동체》에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명예의 야망'(ambition de gloire)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가 타인의 기쁨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우리는 타인의 기쁨을 보면서, 모방을 통해 동일한 기쁨의 감정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기쁜 감정을 갖기 위해, 가능한 한 타인들이 기뻐하게 될 일을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노력 혹은 욕망을 스피노자는 '명예'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타인들을 즐겁게 하는지를, 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요컨대, 명예를 추구하는 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만 한다.
사회성의 토대는, 바로 이렇게 인간들 모두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 즉 공동선의 이념을 형성하도록 만들게 하는 명예의 야망이다. 여기에서 스피노자를 통해 마트롱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명예의 추구라는 욕망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것을 인간 본성에게 주어진 하나의 사실로서 이해하고, 그것이 공동체의 구성에서 어떠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가를 밝히는 것에 있다. 실제로, 근대 이전에 도덕 철학자들은 이상적인 어떤 상태를 인간의 본성으로 간주하고, 그것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비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그려냈다.
철학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감정을 비판해왔다. 마트롱이 명료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헤치고 있는 스피노자의 감정이론이 갖는 의의는, 바로 이런 도덕적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기술하려고 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에 대한 현대적 관심이, 인간에 대한 탈인간주의적 이해를 기치로 내걸었던 구조주의라는 이론적 환경 속에서 생겨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엄밀하게 이해하려고 하였던 스피노자 자신은 좁은 의미에서 구조주의자는 아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욕망에 있다. 그는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구성, 존속, 해체의 논리를 이 욕망과 그 전개로서의 감정들을 통해 설명한다. 인간을 미신과 예속의 길로 이끄는 것도 바로 이 인간의 욕망과 감정들이고(예를 들면 공포와 희망의 감정),이데올로기 비판과 사회변혁을 만들어내는 힘 또한 감정들로부터 나온다(예를 들면 분개의 감정).
스피노자는 비관론자도, 그렇다고 낙관론자도 아니다. 그는 비난하거나 한탄하는 철학자들의 허무주의적 태도를 경계하였지만, 동시에 희망을 갖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인간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그의 철학이 갖는 힘이며, 또한 희망과 허무가 교차하고 있는 오늘날에 특히 많은 현대철학자들이 그를 자신들의 사유의 출발점에 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기순/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원
알렉상드르 마트롱 지음|김문수·김은주 옮김 그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