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而不同

삐라의 추억

지금 여기서 이렇게 2008. 12. 5. 02:40

# 1.

요즈음 탈북자, 납북자 단체에서 북으로 보내는 삐라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북한이 삐라 때문에 얼마나 나라가 혼란에 빠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삐라 때문에 남남 갈등이 고조되면서 오히려 대한민국이 더 혼란에 빠진 것 같다.

 

참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삐라는 북에서 남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남에서 북으로 보내고 있다. 변한 것은 또 있다. 북에서 삐라를 보내던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미군의 전술핵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는 은밀히 핵무기 제조를 추진했었다. 그런데 남에서 삐라를 북으로 보내는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에서 보낸 삐라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종이 한 장이 하늘에서 펄럭이며 내려왔다. 친구가 주어 보니 북에서 보낸 삐라였다. 그때는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가지고 있으면 '반공법'으로 처벌을 받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읽어 보지도 않고 학교에서 반공시간에 배운대로 바로 파출소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우리가 어느 학교 다닌지 물어보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 2.

1970년대 강원도 철책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때는 비무장지역 안에 있는 GP에서 남과 북이 서로 확성기를 이용하여 비방 방송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간 비방 방송의 내용은 단순하고 유치했다. 서로 자기 체제가 우월하며,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대를 2개월 앞둔 병장 한 명이 돌연 북으로 넘어가 버렸다. 아마도 제대 후 사회생활을 염려하던 중, 북으로 넘어오면 잘 살 수 있다는 방송에 속아 넘어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2일 후 북에서 삐라가 뿌려졌는데, 북으로 넘어간 그 병장이 환대받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있었다. 그 병장은 잘 차려진 음식상을 받고, 양 옆에는 예쁜 북쪽 아가씨 2명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북으로 넘어간 병장이 지금도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삐라를 보고 우리 병사들이 북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 3.

지금 생각하면 정말 서로가 어린애 처럼 유치한 싸움을 한 것 같다. 90년대에는 임진강 너머 북한 땅이 보이는 자유로에 우리측 대형 전광판이 있었다. 어느 날 밤에 전광판 앞을 지나가는데 네온싸인 처럼 밝게 빛나는 글씨가 보였다. "우리는 자동차 1000만대 넘었다"라는 문구였다. 많은 돈을 들여 밤새도록 불을 밝히며 북쪽의 약을 올린 그 전광판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요즈음 TV를 보면, 한 아이가 "우리 집 정수기는 얼음 나온다 ~"며 옆에 있는 여자 아이에게 자랑하는 광고가 나온다.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1000만대 넘었다며 자랑하던 그 전광판이 떠오른다. 그 정수기를 만든 회사가 아이들의 소유에 대한 우월 심리를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정수기를 팔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 4.

지난 10년간 남북은 서로 비방을 중지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은 남과 북의 정부간 합의사항으로 서로 존중하고 지켜야 할 사항이다. 남북이 화해하려면 먼저 상호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삐라 살포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민간단체에서 하는 일이라 법으로 막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현 정부가 관할하고 있는 영토에서 벌어지는 일 조차 조정할 능력이 없으면서 어떻게 북쪽과 외교적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삐라의 추억, 지난 몇 십년간 우리는 상호 삐라를 뿌리며 비방을 하여 왔다. 과연 그 삐라가 효과가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100년 후, 우리 후손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과 북의 유치한 비방 경쟁을 어떻게 역사에 기록할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