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들의 천국
어릴 때 대문 앞에서 '밥 좀 달라'며 애걸하는 거지 가족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남루한 옷차림, 촛점이 흐린 눈빛, 아이들을 앞에 세우고 손에는 바가지가 들려있었다. 거지 가족들이 이집 저집에서 얻은 밥과 반찬을 길가에서 오손도손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거지 가장으로서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최후로 선택한 경제활동이었을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밥을 구걸하는 거지는 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새로운 거지'가 등장한 것 같다. 새로운 거지는 옛날의 거지와는 완전히 '격'을 달리한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거지 행세를 하는 것일까? 아마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거지와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요즈음 거지는 밥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로 구걸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어느 부장 검사가 골프장 법인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3년간 무려 1억원을 얻어 먹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한국프로야구협회 회장인가 하는 자가 통신회사 법인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기 마음대로 여기 저기서 먹고 다녔다고 한다. 먹기만 하면 계산은 따로 해주는 자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거지는 우리나라 도처에서 발견된다. 골프장이나 룸싸롱에는 거의 반 이상이 거지라고 보면 된다. 자기 돈으로 골프치고 양주 마시는 자가 별로 없다. 얻어 먹는 자가 태반이다. 그런데 그런 거지들은 자기들이 얻어 먹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자기들이 얻어 먹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거지들이 많다.
그런데 검찰은 이런 파렴치한 거지들을 단속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지난 번 문제가 된 부장 검사는 구속되지 않고 경미한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흔히 말하는 검사의 '제식구 챙기기'가 발휘된 것 같다. 한국프로야구협회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한 모양인데, 더욱 우스운 것은 이에 대해 검찰에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똑 같은 사안으로 검사는 구속하지 않았는데, 만약 한국프로야구협회 회장만 구속한다면 검찰이 법 집행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카드 거지들은 이미 적발된 두 사람 말고도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그야말로 거지 천국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