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씨 24년만에 무죄 판결
1.
강기훈씨 재심 최후 진술
23년 전 판·검사들 거명, 누굴 탓해야 할지 몰라… 난 유서 대신 쓴 적 없다”
신욱 · 신상규 · 송명석 · 안종택 · 남기춘 · 임철 · 곽상도 · 윤석만 · 박경순 검사, 전재기 전 서울지검장
전구영 전 검찰총장,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노원욱 · 임대화 · 부구욱 · 박만호 판사,
1991년 5월 자살한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당시 25세)의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이 벌어진 지 23년이 지났다. 하지만 유서대필(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돼 꼬박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씨(50·사진)는 당시 상황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강씨는 16일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업무 중에도, 식사를 할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무한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그는 6월24일 명동성당 농성을 끝내고 검찰에 자진출두할 때의 장면을 얘기했다. 검찰청 유치감 책임자는 그에게 옷을 전부 벗으라고 명령한 뒤 팬티를 내리고 항문검사를 했다. 이어 검찰청 조사실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강씨를 취조하던 검사가 “너 졸아서 안되겠다. 잠시 서 있어”라고 명령하고 수사관 네댓 명이 잠 깨우는 마사지를 한다며 강씨의 뒷목을 강하게 지압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후 1992년 대전교도소 중구금 독거시설에 수용돼 있을 때 교도관이 두툼한 확정판결문을 던져준 기억 등을 강씨는 법정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강씨는 최후진술 중 자신을 조사했던 검사와 선고를 내렸던 판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담의가 나에게 ‘기억을 되씹지 말고 욕을 하고 싶으면 욕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누구에게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강씨는 이어 “나는 유서를 대신 쓴 적이 없으며, 혹시 꿈에라도 같이 일하던 동료의 죽음을 부추기거나 자살을 돕거나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비인간적인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강씨는 “이 사건이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편견’을 갖게 되면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구형을 통해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은 검찰과 사법부가 합작해 억울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강씨의 잘못된 행위를 재심 판결문에 자세히 적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며 항소기각(과거 판결 유지)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13일 이 재심재판의 선고를 내리기로 했다.
2. 서울변호사회 "강기훈 유죄 판결, 판검사들 과오 책임져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서울변회)가 ‘유서 대필 사건’의 강기훈씨가 24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은 것과 관련해 그를 기소, 유죄 판결한 판검사들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변회는 17일 낸 성명서에서 “왜곡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데 24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강씨의 억울함이 밝혀진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며 “진실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강씨와 쉽지 않은 소송을 끈질기게 수행한 그의 변호인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를 기소하고 유죄 판결한 사법부는 과오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변회는 “강씨가 최후진술에서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했듯,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고 사명감을 갖지 못했던 법조인들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또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야말로 실추된 사법부의 권위를 바로세우는 것이고, 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서울변회는 “법조인들은 무고한 개인이 불의한 권력 앞에 짓밟히는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의를 지키는 양심이 되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4일 ‘유서대필 사건’ 재심의 상고심에서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24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다.
서영지 기자 / 한겨레신문 (2015. 5. 17)
3. 23년 전, 그때 사건을 담당한 검사와 판사들
그해 6월24일, 강씨는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신상규 주임검사(2009년 광주고검장으로 퇴임)는 맥주를 창틀에 깔아놓고 취조를 했다. 취기가 오르면 주먹으로 때렸다.
입이 거칠었던 남기춘 검사(2011년 서울서부지검장으로 퇴임)는 "이 빨갱이 새끼야, 내가 거꾸로 매달아 취조하면 3시간이면 끝난다"고 협박했다.
신참 수사검사였던 곽상도(2013년 청와대 민정수석)는 잠을 못 자게 했다. 밤샘 조사가 사흘을 넘어가면 거의 반실성한 상태가 됐다.
어느 날인가는 검사가 책상에 불탄 주검 사진을 쫙 깔았다. "네가 죽인 김기설 사진이야. 똑바로 봐"라고 다그쳤다. 그러고선 20여 일 동안 내내 내장탕을 시켜줬다. 강씨는 그 뒤 내장탕을 입에 대지 않는다.
<강기훈, 그 치유는 이제 시작이다> 기사 중에서 발췌, 황예랑 기자 / 한겨레21 (2015. 5. 27)
4. 그리고 그들과는 다른 사람
최후 진술을 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오고 있는 강기훈 씨와 변호사
그런데 변호사의 얼굴이 많이 본 듯 눈에 익다.
최근 TV와 신문에 얼굴이 많이 나온 분이다.
알고 보니,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석태 변호사다.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의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관여한 검사들, 판사들처럼 비겁한 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