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양심을 보았다(Beautiful Souls)

지금 여기서 이렇게 2014. 9. 23. 17:53

1. 유제푸프 학살

 

폴란드 동부 지역의 작은 도시 유제푸프. 1943 7 13일 운명의 그날 새벽, 동 트기 전의 유제푸프는 적막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이 적막을 깼다. 트럭 여러 대가 마을로 들이닥친 것이다. 트럭에는 나치 독일 101예비경찰대대의 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마을에 살던 1,800여 명의 유대인 주민들을 집 밖으로 끌어냈다.

 

광장으로 끌려 나온 주민 중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이 선별되었다. 강제수용소로 보내질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 즉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들은 트럭에 태워져 숲 입구까지 갔고, 거기에서 차례대로 몇 명씩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들은 줄지어 바닥에 엎드렸다. 그 뒤로 독일 경찰이 한 사람씩 섰다. 경찰들은 자기에게 할당된, 이제 곧 학살될 유대인의 목에 소총 총구를 겨누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 비명을 질렀고, 커다란 비명은 메아리가 되어 숲을 흔들었다. 총구들은 어김없이 불을 뿜었다. 소나무 그림자 아래, 희생자의 두개골 윗부분이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길고 긴 학살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숲에 쌓이는 시체는 점점 늘어났고 주변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 학살을 집행하는 대원들의 옷도 온통 피범벅이었다. 경찰들은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학살은 그렇게 밤늦도록 집행되었다.

 

학살이 있기 전, 101예비경찰대대의 대대장 빌헬름 트랩 소령은 부하들에게 유대인이 독일의 적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당시 그의 부하들 가운데 4분의 1은 나치당원이었다. 트랩 소령은 학살 집행에 참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빠져도 좋다고 했다. 사병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사람이 옆으로 빠졌다. 10여 명이 더 빠졌다.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짧지만 의미심장한 순간, 사병들이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학살에 참가해야만 했다는 상식적인 발상을 뒤엎는 순간이었다. 사병들은 단지 명령에 따라야 했던 이유로 학살작전에 참가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학살에 참가했다. 이들은 학살에 참가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브라우닝은 이에 대한 해답을 집단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외롭게 서 있을 때 개인이 느끼는 공포에서 찾았다.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 Ordinary Men》에는 그날 유제푸프에서 있었던 학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2. 유대인 소년

 

이탈리아인 조르조 팔라스카는 어느 날 부다페스트 거리를 걷다가 발을 멈추었다. 한 무리의 나치주의자들이 어린 소년을 쫓아가 붙잡아서는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있었다. 백주대낮이었음에도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팔라스카가 지켜보는 가운데 독일인 한 명이 권총으로 소년의 머리를 후려갈겼다팔라스카는 곁에 있던 사람에게 그 소년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팔라스카는 경악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뒤 그는 자기 삶을 유대인을 구하는 일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