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는 우리 집 숫강아지 이름이다. 이제 태어난지 4년이 되었으니까 사람으로 치면 한창 혈기 넘치는 청년인 셈이다. 원래 환희는 성격이 얌전하고 느긋한 편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지긋이 지켜보며 기다린다. 그렇지만 결국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런 환희가 요즈음 무척 힘들다. 환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환희의 엄마 때문이다. 환희의 엄마가 지금 생리 중인데 이게 마법을 걸고 있는 것 같다. 평소 얌전하던 환희가 집에 기둥이란 기둥에는 모조리 오줌을 누어 표시를 해 놓고 있다. 책상 다리, 의자 다리 등 조금이라도 하늘로 치솟은 것이 있으면 어김없이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고 있다. 오줌을 닦기가 무섭게 어느새 또 오줌을 싸놓는다. 그리고 어쩔 땐 자신의 감정을 억누리기 힘든 듯 숨을 가쁘게 몰아 쉬기도 한다.
신의 섭리가 참으로 오묘하다. 암컷의 암내가 숫컷의 정신을 이렇게 혼미하게 만들다니. 환희를 쫓아다니며 여기 저기 싸놓은 오줌을 치우려는데 은근히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런 환희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환희야, 힘들지..."
내가 스스로 말을 해놓고도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하다. 이렇게 여기저기 오줌을 싸고 다니는 녀석은 당연히 야단치고 기합을 줘야하는데, '힘들지 않냐'고 달래 주고 있으니... 만약 내 아들이 이렇게 오줌을 싸고 다녔으면 많이 혼났을 것이다.
잠시 나 자신을 뒤돌아 보며 생각을 해보았다. 아하! 바로 이것이구나. 기대심리... 그리고 사랑...
내가 환희를 야단치지 않은 것은 이 녀석이 강아지라서 기대가 높지 않은 탓이다. 그 녀석이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녀석을 사랑하니까...
내가 자식들에게도 기대하는 것이 높지 않다면 야단칠 일도 없을 것 같다. 가끔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기대심리, 아니 욕심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좀 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조금 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나의 기대를 조금 낮추도록 하자.
그러고 보니, 어느 친지의 결혼식에서 주례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주례는 이제 결혼하여 평생을 같이 살아갈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낮추면 결혼 생활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
환희 눈망울, 무얼 그렇게 보고 있니, 환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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