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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다

연평도 포격 부상 해병들... 그리고 북한 해군 병사

1. 대한민국 해병

 

몸 곳곳에 파편 박혀… 정상생활 가능할지 걱정"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23일로 한 달이 됐지만, 부상 장병은 여전히 포격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최근 퇴원과 동시에 제대한 김용섭(22·당시 병장)씨를 제외한 부상 장병 15명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구교석(21) 일병의 아버지는 22일 "교석이가 옆구리와 어깨에 박힌 포탄 파편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2번이나 받았다"며 "우리 아들뿐 아니라 다른 부상 장병이 몸에 파편을 십여개씩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도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중상을 입은 장병들이 지난달 26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한규동(19) 일병의 어머니 이필선(50)씨는 "아물지 않은 아들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한 일병은 파편이 얼굴에 박혀 15㎝가량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아이가 휴지갑만 떨어져도 깜짝 놀라더니, 최근 연평도 포격 사격 훈련 때는 극도로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오른쪽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박히고 오른팔에 관통상을 당한 김명철(20) 일병은 1차 수술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오른팔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김 일병의 아버지는 "아이 전공이 기계공학인데 아직 팔이 낫지 않았다"며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김진권(20) 일병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외진을 받고 국군수도병원으로 돌아왔다. 김씨의 어머니 진문자(47)씨는 "서울대병원 의사가 아들을 보더니 '연평도 부상 장병의 상태가 이렇게 심한 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더라"고 했다. 김 일병은 사고 당시 포탄 파편에 맞아 오른쪽 발등이 날아가고, 위와 쓸개·십이지장이 모두 파열됐다고 한다. 


진씨는 "진권이가 낮에는 통증이, 밤에는 악몽이 찾아와 진통제와 수면제를 달고 지냈다"며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졌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아버지 김봉수(52)씨는 "여기(국군수도병원)에서는 다리 수술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됐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병실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나라를 지키다 다친 아이들이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국가가 대책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조선일보 (2010.12.23)

 

 

2. 연평해전에서 부상당한 북한 해군 병사의 증언  

 

아마도 탈북자 2만 명 중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던 북한 서해교전(2차 연평해전) 참전자들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 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 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렌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새까만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되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조끼입니다.

방탄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장진성 (전 북한 통일전선부 근무) /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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