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덩샤오핑, 주더, 펑더화이 … 이들도 몰랐다, 57년 뒤 항모·스텔스 띄우게 될지
중국군 현대화의 역사는 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9월 28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열린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방위원회와 국방부를 설립한 것이 그 단초다. 당시 국가주석인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국방위원회 주석을 겸하고 부총리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가 초대 국방부장을 맡았다. 마오쩌둥이 제의한 14명의 국방위 부주석도 임명했다. 중국군 현대화의 첫발을 내디딘 이날, 국방위원들이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을 중앙일보가 최근 입수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국방위원회 주석단 룽윈(龍雲·용운·①), 장즈중(張治中·장치중·②), 예젠잉(葉劍英·섭검영·③), 쉬샹첸(徐向前·서향전·④),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⑤), 류보청(劉伯承·유백승·⑥), 주더(朱德·주덕·⑦), 마오쩌둥(⑧), 펑더화이(⑨), 허룽(賀龍·하룡·⑩), 뤄룽환(羅榮桓·나영환·⑪), 녜룽전(⑫榮臻·섭영진·⑫), 청첸(程潛·정잠·⑬, 푸쭤이(傅作義·부작의·⑭). 녜룽전은 천안문 사태 때 군 원로로서 진압 병력 출동을 허가한 인물이다. 마오쩌둥 외에 앞줄에 앉은 사람은 모두 부주석이다. 부주석 중 린뱌오(林彪·임표)와 천이(陳毅·진의)는 불참했다.
국방위원회 부주석 중 10명이 이듬해인 1955년 9월에 신중국 창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원수 계급장을 달았다. 예젠잉(1897~1986)·쉬샹첸(1901~1990)·류보청(1892~1986)·주더(1886-1976)·펑더화이(1898~1974)·허룽(1896~1969)·뤄룽환(1902~1963)·녜룽전(1899-1992)·린뱌오(1906~1971)·천이(1901~1972)가 그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국방위원들이다. 둘째 줄 왼쪽에서 넷째가 후일의 국가주석 리셴녠(李先念·이선념·⑮), 일곱째는 총참모장 황커청(黃克誠·황극성·(16), 아홉째는 쑤위(粟裕·속유·(17), 둘째 줄 오른쪽 첫째가 김일성의 88여단 시절 여단장 저우바오중(周保中·주보중·(18). 맨 뒷 줄 오른쪽 셋째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부의)를 자금성에서 내쫓은 루중린(鹿鍾麟·녹종린·(19)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중난하이 전속 사진가 허우보(侯波·후파).
같은 날 중공 중앙정치국도 당 내에 별도로 군사위원회를 설립했다. 마오쩌둥이 주석을, 10대 개국 원수 전원과 덩샤오핑이 군사위원을 맡았다.
박경덕 기자/중앙일보 (201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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