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성서에 담긴 이야기는 과학적인 사실이나 역사적인 사실이기보다 저자가 속한 신앙 공동체에 정체성을 주기 위한 신앙 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사회 경제적인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과학과 고고학의 등장으로 성서가 이전의 위상을 잃게 되자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주의'로 무장해 성서 내용을 자신들처럼 축자적으로 믿지 않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낙인찍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러고는 자신들만이 유일하고 바르게 신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자신들만의 담을 쌓고 우믈 안의 개구리처럼 그 안에서 살아간다. (258쪽)
# 2.
랍비 헐버트 골드스타인은 유명한 랍비이자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1929년 4월 베를린에 거주하던 위대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이슈타인에게 급히 전부를 보낸다.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이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미국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 그 신은 이 세상의 규칙적인 조화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심이 있는 신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골드스타인이 믿는 신과 스피노자의 신이 다르며, 골드스타인의 신은 '인간의 운며오가 행동에 관심 있는 신'이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교리에 맞게 잘 행동하면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는 그러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신은 다르다. 그 신은 '우주의 규칙적인 조화 안에서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다. (20쪽)
# 3.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 친구들과 스피노자의 사상에 심취했으며, 심지어는 네덜란드의 구두 수선 거리에 있는 스피노자의 집을 방문하거나 스피노자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다.
내가 이 고귀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이지. 나는 그가 홀로 자신의 거룩한 후광으로 외롭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해.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지. 이 가르침이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위로하는 겉모습을 신뢰하지 말라는 거야. 그는 숭고하게 태어난 것이 분명해.
아이슈타인이 스피노자를사랑한 이유는 그의 사상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가 주장하는 높은 차원의 지성에 매료됐다. 이 지성은 자연, 본질, 그리고 신이 합쳐진 삼라만상의 원칙이다. 이 지성에 다가가는 행위가 신에게 접근하는 것이며, 이것을 "지적인 신에 대한 사랑(amor dei intellectualis)"이라고 정의한다.
아인수타인은 스피노자처럼 전통적인 신으로부터 위안을 얻거나 그 종교로부터 도덕적인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법칙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교할 뿐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정확하고 심오해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 탐구할수록 우리는 경외심으로 가득 차게 되어 자연스레 우리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아 발전하면 할수록 우주에 있어서 신의 섭리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22~23쪽)
# 4. 아브라함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개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천국은 중동의 사막 환경에서 등장한 독특한 개념이다.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에게는 특별한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을 수메르어로 '에딘(edin)'이라 한다. '에딘'은 계곡 사이에 위치한 초목 지대를 이르는 용어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내던 수메르인에게 에딘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수메르어 '에딘'은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를를 정복한 바빌로니아(고대 바빌로니아)인에게 차용되었고, 바빌로니아인은 이를 자신들이 사용하는 아카드어 '에딘나(edinna)'로 불렀다. 이 중요한 문화 차용어는 후에 구약성서로 흘러들어간다. 기우ㅝㄴ전 586년경 바빌로니아의 포롤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바빌론의 찬란한 문명을 보았다. 특히 그들은 느부갓네살 2세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만든 공중 정원의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92미터 높이의 신전인 지구라트를 보고 감탄했다. 이것은 후에 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에 '에딘나'라는 단어는 〈창세기〉에 히브리어 '에덴(eden)'으로 차용되어 등장한다. (310~311쪽)
《인간의 위대한 질문》 중에서 /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