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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행정력을 봤을 때, 현재 18% 정도 되는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26%), 나아가 노르웨이 수준(42%)까지 올리는 게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GN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을 현재 수준 10%에서 OECD 평균(21%)나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수준(30%) 이상으로 올리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하나다. 바로 대한민국의 기본적 구조와 지배자들의 전략과 그들이 선호하는 정책, 그리고 그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력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9쪽) 

 

이 글을 쓰기에 한 가지 고백해야겠다. 사실 나는 대통령을 누가 하는가에 그다지 첨예한 관심은 없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1997년 이후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한 번도 바뀌거나 수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03쪽)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간에 정책의 핵심을 대통령이 주체가 되어서 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국내 재벌들의 두뇌 집단과 해외 대자본의 요구를, 당선에 성공한 정객들이 알아서 가감해서 경제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통령이 햇볕정책, 곧 햇볕이 행인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하듯 북한의 시장화를 유도하겠다는 차원에서 제한적인 대북 경험 정도 할 권한까지는 있다. 노무현 초기처럼 중국에 대한 친화적 제스처를 할 권한은 부여돼 있으며, 또 워싱턴의 천자(天子)가 이라크 출병과 같은 일을 명령할 때에 내색을 하여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을 지유도 있다.

 

그러나 일개 후국(侯國)의 후왕(侯王)으로서 제국의 출병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경쟁 제국인 중국에 제스처 이상으로 정치 군사적으로 가까워진다는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거의 상상 밖의 일이다. (104쪽)    

 

그렇다 하더라도 박근혜 집권 기간이 보여준 것은 극우정객 출신의 대통령치고도 박근혜가 너무나 독보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형식적 민주화 이후의 시간을 통째로 돌아보면, 이 정도로 시대착오적이고 비상식적인 권력이 태어난 것은 처음인 듯하다. 사실, 이와 같은 수준의 극우정객이 정당 당수, 대통령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 정치에 최고 선거직을 지향하는 정치인의 '품질'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근혜에 비하면,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에 나선 노태우나, 김일성과 회담을 하려고 했던 김영삼마저 통일지향적 진보정치인으로 보일 정도다. 촛불 사태에 밀려 대운하 등 가장 망상적인 계획들을 그래고 철회하거나 대폭 수정한 이명박은 소통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보일 정도다. (105쪽)

 

답변은 간단하다. 남한 지배층은 사실 내부 동질성이 강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이다. 주요 재벌과 관벌 그리고 언론재벌, 재벌언론들을 보면,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벼슬을 하거나 기업을 경영했던 그 조상들이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저들은 혼맥으로 철저히 이중 삼중 연결돼 있으며, 서울의 몇 군데 특정 동네에서 살며, 자녀들을 같은 학교나 같은 대학에 보낸다. 이들이 한국을 배타적으로 쇼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 서열 상위 1%가 개인 소유의 땅 50%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주식부자 1%가 시가총액의 63%를 소유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닌가?   (120쪽)

 

내 앞에 별로 두껍지 않은 복사본 한 부가 놓여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도사관에서 복사한 이승만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전시 중립 개념〉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이승만이 1910년에 학위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대한제국이 강점당했는데, 요즘의 석사 논문 분량(도한 115쪽)인 이 박사의 학위 논문에서 '코리아'라는 구명을 찾는 것은 허사다. 1910년이면 러일전쟁 때 고종의 전시 중립 선언이 결국 일본의 강압으로 무효화된 지 불과 6년 후라 생생히 잘 기억했을 텐데, 이승만에게 자신의 출신 국가는 문턱 높은 프린스턴대학의 연구 대상이 되기에는 참으로 하찮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 대한 서술을 찬양조다. "미국 독립선언은 만구그이 평화를 증진시키고 무역의 자유를 장려하고, 특히 전시 중립의 권리와 의무 등과 관련하여 국제법의 원칙들을 확장시킬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렸다"(논문 14쪽) 참, "만국의 평화를 중진시키는 미국", 이건 아부치고는 좀 심한 게 아닌가?

 

이승만은 1908년 대한제국의 강점에 적극 협조한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1876~1930), 전면운(1884~1947) 두 독립운동가를 위한 법정 통역을 거절한 바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를 변호헐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핑계일 뿐이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기독교 평화주의자였다면 왜 그 학위 논문에서는 예컨대 미국의 플로리다 세미놀족에 대한 침략 전쟁을 "필요한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묘사했을까?(논문 46~47쪽) 이승만은 그저 루스벨트 대통령과 친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백인을 사살한 두 '유색인종'이 부담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는 그런 '테러리스트'가 연상되지 않는 '명예백인'이 되고 싶었으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1909년 안중근의 의거마저도 비판적으로 봤다. '코리아는 테러리스트들의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미국 신문을 채우면 자신과 같은 젊은 기회주의들의 주류 사회 편입이 어려워진다, 이것이었다. (160쪽)

 

《주식회사 대한민국》 중에서, 박노자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