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도의 사색이랄지, 자연의 깊은 비밀을 꿰뚫고 들어가는 것도 필요없다. 신이란 결코 질투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존재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선 그저 약간의 상식만 있으면 된다.
2.
소위 영감을 받은 자들과 예언자들이 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검토해 보자. 그것들이 얼마나 조악하며 모순적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신이란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인간은 신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 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 역시 두 눈을 가지고 있으며, 두 귀와 콧구멍, 입술, 두 팔과 두 손, 두발 그리고 심장과 내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신은 인간과 똑같은 여러 감정들, 즉 사랑과 질투, 증오,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 두려움과 혐오감, 분노와 격정, 그리고 복수심 등을 가진다...... 이런 것만 봐도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조잡한지 알 수 있다.
3.
자연에는 그 어떤 목적도 존재하지 않으며, 궁극의 원인이라는 것도 인간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밝히기 위해서는 그리 오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의 목적'이니 '궁극의 원인'이니 하는 교의(敎義)야말로 오히려 지금까지 신에게 부여되어온 온갖 완벽의 경지를 일거에 박탈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 증명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만약 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목적을 두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이 현재로서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이 현재로서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으로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한 시기가 있고, 언제든 그 이유가 생기면 행위를 바라게끔 된다는 얘긴데, 이는 곧 신을 매우 빈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처사이다.
4.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바로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견해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세상 삼라만상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끌어들이고, 그 속에서 얼마나 이득을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더없이 안성마춤인 종교를 만들어냈다.
5.
자신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믿지만, 실상은 상상한 것에 불과한 견해를 가졌을 뿐인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생각해낸다. 역시 상상한 바로 그대록가 현실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자고로 인간이란, 오감을 통해 사물들을 느낄 때, 그것들을 생각 속에서 그려내기 쉬우냐 어려우냐에 따라 제대로 질서가 잡힌, 혹은 엉망진창 흐트러진 상태 그대로 믿어버리기 마련이다.
결국 신이 질서를 통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인간에게처럼 신에게도 상상의 기능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6.
신들을 만든 두려움이 곧 종교를 만들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인간사 행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인간은 양식과 이성을 단념하는 대신 일련의 환연(幻影)을 자기들의 행실을 보살피는 수호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일단 그렇게 신들을 꾸며내자, 그들은 신들이 과연 어떤 성질을 가졌을지 알고 싶었고, 결국 그 실체는 아마도 인간의 영혼과 똑같을 거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7.
사기가 먹혀드는 기반이 곧 대중의 무지라는 사실에 유념하면서, 종교의 창시자들은 입지를 강화하고 무사히 유지하는 데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신들을 모신답시고 제단을 세운 그들은, 적당한 형상물을 통해 그 신들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어마어마한 신전을 건축하여 대규모 의시과 행사, 희생제의를 창안했고 의식집행자라든가 사제들을 임명해 자기들을 돕도록 했다. 특별히 그런 임명자들에게는 십일조라는 것외에도 제단에 제물로 바쳐진 짐승 중 가장 좋은 살점들, 가장 좋은 과일과 야채들, 곡식들이 돌아가게 했으며, 그럼으로써 이들 돈에 움직이는 저급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종교의식에 더욱 악착같이 매진하도록 만들었다.
8.
맹신자란 신도 인간도 당최 편하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그는 신이 만족하고 있는지가 항상 의문이며, 신을 진정시키고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비위를 다 맞추려고 애쓴다. 쉴 새 없는 기도와 맹세와 봉헌으로 귀찮을 지경으로 신을 들볶는 가운데, 툭하면 기적을 들먹이고, 다른 사람 같으면 부질없는 추측이라 치부할 것을 쉽사리 믿고 받아들인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마저도 신이 내려보낸 계시로 해석하고, 언제나 뭔가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처럼 누가 뭘 얘기하든 무조건 혹하며너 악착같이 매달린다.
<세 명의 사기꾼> 중에서
스피노자의 정신 지음/성귀수 옮김/생각의 나무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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