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중국의 김성탄(金聖嘆)이 적은 33가지의 「불역쾌재, 不亦快哉,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읽었을 때의 신선한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감히' 따라 적어 본다.
1.
중학교 3학년인 딸 아이가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받았는데 '행복지수' 평가 항목에서 98.5%가 나왔다. 딸의 행복지수가 너무 높게 나와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놀라고 화제가 되었다. 그 후로 학교에서 딸의 별명이 '행복지수 98.5%'라고 불리게 되었다. 공부는 1등을 못하지만 딸의 행복지수가 전교 1등이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
유럽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여행 경비를 부담하면 가족들도 함께 갈 수 있다고 한다. 아내, 아들, 딸 이렇게 세 명의 여비를 계산하니 금액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는가.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담임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모두 아들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행 기간이 학기말 시험과 겹쳐서 안된다는 것이다. 학교 설립 이래로 중 3 학생이 시험을 보지 않고 여행을 간 적이 없다고 한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고등학교 진학을 못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도 끝까지 우리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떠났다. 학기말 시험을 보지 않은 아들의 중 3 성적은 꼴찌를 간신히 모면하는 정도로 나왔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11일간 유럽을 즐겁게 여행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3.
우리집 강아지 3마리 목욕을 시켰다. 평소에는 아내와 함께 목욕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혼자서 다해 버렸다. 처음부터 강아지 3마리를 목욕시킬 생각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제일 '꽤재재'해 보이는 어미 강아지 한 마리만 목욕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미를 목욕시켜 놓고 보니 털이 하얗게 빛나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내친김에 나머지 두 마리도 목욕을 시켰다. 한 마리씩 차례대로 목욕시키고 털을 말리니, 처음 우려했던 것 과는 달리 힘들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목욕을 끝냈다. 밤이 되니 3 마리가 모두 내 침대로 올라오겠다고 꼬리를 흔든다. 침대로 올려주었더니 모두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숫강아지 '환희'가 내 겨드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고서는 이내 쌕쌕 숨을 쉬며 잠을 잔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콧김 그리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환희와 서로 생명의 교감을 나누며 누워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010.11.11)
4.
올해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소포가 왔다. 벌써 8년째다.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갔을 때 2년간 돌보아 준 호스트 가족으로부터 보내온 것이다. 2년간 아무런 댓가 없이 돌보아 준 것만도 고마운데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온다. 물론 우리도 매년 호스트 가족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다. 세상에 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우리 아들을 자신들 자식처럼 생각해 준다. 멀리 떨어져 사는 그집 할머니도 마치 자기 친손자처럼 자상하게 돌보아 준다. 아들을 만나면 한국의 우리 가족들 안부를 물어보고, 항상 하나님께 우리의 축복을 기도한다고 한다. 하늘 아래 이런 인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천사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서로 친척처럼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010.12.25)
5.
2012년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미국에서 카드와 함께 소포가 왔다. 상은이 미국 엄마는 상은이 추억이 묻은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보내 왔다. 고등학교 3년간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아 놓고 온 가족이 선물을 주고 받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던 것들이다.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넣어두는 크리스마스 양말이 담겨 있었다. 양말 한 면은 미국 엄마가 산타 할아버스 모습을 손수 수를 놓았는데 맨 위에는 상은이의 미국 이름인 ANNIE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목각 인형 2개가 있었다. 2006년 축구하는 인형, 2008년은 졸업 가운을 입은 인형이었다. 그해 그해 상은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카드에는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돌려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상은이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크리스마스 때 혹시 오려나 하는 기대로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왔으니 보내온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시골마을의 이런 순수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사랑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013. 3. 2)
6.
3월 첫 번째 토요일 아침, 침대에서 함께 자는 우리집 강아지 환희가 날 깨운다. 아~ 이 녀석들 이제 아침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거실로 나오니 온 집안이 고요하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들 휴일 아침 단잠을 즐기고 있다. 강아지 세 녀석들에게 아침밥을 주었다. 이녀석들은 밥을 다 먹은 후 매일 하던 습관대로 거실 여기저기에 대변과 소변을 남겼다. 휴지와 분무기를 들고 대소변을 제거했다. 식탁 위 보온병을 들어 보니 가볍다. 어제 우려놓은 철관음차를 밤새 다 마신 모양이다. 물을 끓여 철관음차를 우려내어 보온병에 가득 채워 놓았다. 가족들이 일어나면 이 차를 마시게 될 것이다. 이제 커피를 내릴 차례다. 렌지에 물을 올리고, 핸드밀에 커피원두를 넣고 서서히 손잡이를 돌렸다. 물이 다 끓었다는 소식을 전해 온다.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끼우고 그 위에 커피가루를 넣고 가볍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방으로 들어가니 자고 있었던 아내가 커피향을 맡고 어느새 일어나 있다. 서재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아침 커피를 마신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다. 휴일 아침,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201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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