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4대 복음서를 정리한 것이다. 나는 복음서의 원래 순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가르침의 의미를 기준으로 복음서를 재정리하려 했다.
나는 복음서에 담긴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수태와 탄생, 세례 요한의 투옥과 죽음, 예수의 탄생, 예수의 가계도, 예수가 가나와 가버나움에서 보여주었던 기적, 악마와의 싸움, 바다 위를 걸었던 기적, 말라 죽은 무화과 나무, 병자의 치유, 죽은 자를 살린 기적,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로써 성취되었던 예언들은 생략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생략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런 내용들은 예수가 우리에게 주었던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예수가 살았던 동안의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정통으로 인정하는 복음서를 나름대로 해석한 이 책에서 약간의 모순이 발견되더라도, 4대 복음서 자체를 무류(無謬)한 성서로 인정하는 관습 자체가 커다란 오류라는 사실을 독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는 플라톤이나 필론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엇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그가 죽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들었던 바를 기억에 되살리며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교회에서 처음에 세 복음서만을 인정했고, 다음에 하나를 덧붙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정전으로 인정된 4대 복음서의 많은 구절들도 외경(外經)으로 배척된 복음만큼이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한 독자들은 그렇게 선택된 4대 복음서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손을 거친 작업이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4세기부터 우리에서 전해진 모든 문헌들은 구두점도 없이 쓰여진 필사본이었다. 따라서 4세기와 5세기부터 무척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결과로 지금도 복음서는 여러 해석본이 나돌고 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을 감안한다면, 현재와 같은 복음서가 성령께서 직접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이라는 오랜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 정신을 포괄적인 신의 계시로 해석하지 않으며, 역사적 현상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던 가르침으로 해석할 따름이다. 내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바로 이런 해석 때문이었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4대 복음서에 담겨 있다. 4대 복음서에서 나는 진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인도해 주는 성령의 가르침을 발견했다.
내가 4대 복음서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하여 '요약 복음서'를 쓰려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며,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뭇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만들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너무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그의 가르침을 순수한 마음에서 깨닫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짜집기하여 만들어낸 괴물 같은 전통을 기독교 교리라고 내세우는 현재의 기독교에 대해 그리스도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편견에 찬 기독교 교리도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에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런 방향에서 다시 읽어 버면, 독자는 기독교 교리가 저급하고 고상한 것을 뒤섞여놓은 것이나 미신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너무도 순수하고 정확하며 완전한 형이상학과 윤리를 담고 있음을 몸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실천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기독교 교리와 가치를 밖으로 드러내놓고 떠들어대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 교리를 진실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 교리를 입 밖으로 말하며 전도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따르는 광신도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들이 아무리 강대하더라도, 그들이 아무리 권세있는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그들은 마지막에 심판할 사람이 아니라 심판받을 사람이다.
그런 독자들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다. 겸손하게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모든 위선을 포기하는 것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저질러왔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죄상을 폭로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거짓된 위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길만이 남게 된다. 나를 박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의 책으로 완결지었기 때문에 그런 박해가 있더라도 내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1883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레프 톨스토이 (Lev Nikolaevich Tolstoi)
<톨스토이 성경> 서문 중에서,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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