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민군 포로 사진
인적 사항을 목에 걸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1950. 10. 2. 인천)
10대 후반의 어린 청소년들로 보인다
누가 이들에게 총을 들게 했는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전쟁에 뛰어들었고, 포로가 되었는가?
이들은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그리운 부모형제를 다시 만났을까......
벌거벗은 채 두 손을 들고 유엔군에게 투항하는 인민군들(1951. 5. 29.)
이들의 모습은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동네 골목에서 뛰어놀던 개구장이들 모습이다.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아야 할 이들을 누가 전쟁터로 내몰았는가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은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혔으니.......
총구 앞에서는 사람도 짐승이 된다.
수풀속에서 기어나와 투항하는 인민군(1951. 9. 20.)
이 사진을 보면, 누가 이를 인민군이라 하겠는가.
어쩌면 동네 에서 구걸하는 거지로 보인다.
그렇다!
이 어린 소년은 지금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지 않는가......
유엔군 감시병들이 거제도포로수용소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1952. 8.)
사진자료 : 오마이뉴스 <인민군 입대, 국군 제대... 파란만장 포로기>에서 (2015. 7. 8) 송관호 수기, 김종운 정리 <전쟁 포로>
2.
같은 해 10월 중순, 평양에 진주한 미군은 한국군의 행동에서도 ‘비정상성’을 발견했다. “한 건물 안에서 적들이 우리에게 총격을 가했다. 우리는 창문을 향해 두 발을 쐈고 여러 명의 북한군이 손을 들고 나왔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날이 추워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들의 옷을 벗겼다. 추운 날씨에 그들이 뭘 어쩔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군 병사가 그들 주위를 돌더니, 갑자기 한 명을 쏘았다. 두 번째 북한군 병사가 총에 맞은 뒤, 우리는 한국군을 쫓아버렸다.”(BATTALION SURGEON, KOREA 1950-1951) 미군이 볼 때 이런 행동은 명백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었고 ‘정의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였으나, 한국군 대다수는 이를 전쟁 도발자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현으로 여겼다. 결국 미군은 한국군에게는 포로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전쟁 중 포로 관리의 전권을 미군이 쥔 이유 중 하나다.
전우용 역사학자 / [ 세상읽기]‘ 정상성’의 기준 중에서 발췌 / 경향신문 (201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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