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멸망할 때 고위직에 있던 76명이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이들은 왕족과 지배층들이었는데, 당파를 알 수 있는 64명의 수작자 중 북인은 2명, 소론은 6명이고 나머지 56명은 모두 노론이었다. 조선은 왕족들과 집권 노론이 팔아먹었다.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사람이 보면, 이들 대부분이 조선 후기 인조반정 이후에 집권한 노론 당파에 뿌리를 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에게 대한제국을 팔아먹은 총리 이완용이 노론의 마지막 당수였다. 이 노론의 후예들이 아직까지 한국 사학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 우리가 나라는 되찾았지만, 역사는 여전히 조선총독부 사관이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고, 현재다
한국 사회의 잘못된 분야를 파고들어 가다 보면, 공통으로 만나는 문제가 바로 친일잔재 미(未)청산이다. 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과 그 제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역사학계에 절대 권력을 장악하면서 역사학의 기본 구조가 왜곡됐다. 노론에서 친일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930년대 식민지 부호(富戶)를 살펴보니, 조선총독부에서 작위를 받았던 민영휘와 이완용의 자식들이 1등부터 3등까지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 선생의 후손인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 편찬위원장은 광복 70주년 경기도학술토론회에서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진회 송병준의 사위 구연수는 명성왕후의 시신에 석유를 뿌려 소각하는 일을 감독한 인물인데, 나라가 망한 후 경찰 최고위직인 경무관과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또 그 아들 구용서는 해방 후 한국은행 초대 총재가 됐다고 한다. 궁내부대신 민병석은 자작의 작위를 받았는데, 그 아들이 대한민국 제5~6대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라는 것이다. 민복기는 유신 때 대법원장으로서 인혁당에 대한 사법살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덕일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프레시안 기사 중에서 (201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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