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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생명과학과 선

  

정상과 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어느 쪽도 연기적 관계 속에서 인과를 떠날 수 없지만 정상세포는 인과에 지 않고 깨어 있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가 오고감(生死)에 연연해하지 않고 때가 되면 조용히 소멸(세포자멸) 가는 데 반해, 암세포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욕망의 노예로 인과에 깨어 있지 못하고 당장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취하여 결국 생명체 전체를 조화롭지 못하게 만들어 너와 나 모두 성급한 파멸에 이르게 한다.  

 

동물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오면 더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기 보다는 조용히 받아들인다. 다른 동물에게 잡혀 먹지 않는 한, 병들고 힘이 없어지면 코끼리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경우 조용히 무리를 떠나 죽을 장소로 향하고, 단독생활을 하던 동물은 조용한 장소에 숨어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쇠잔해져 감에 따라 욕망도 같이 잠들어 간다.

 

인간이란 자신이 판 우물에 빠진 후, 힘들어 아직 나오지 못한 채 오직 기어 나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탁월하고 위대하다고 믿는 엄청난 나르시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를 세워 스스로에 갇힌 후 스스로를 놓아 보낼 수 있기에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영원히 우매한 동물이다.

 

성경에도 보기에 심히 좋던 에덴동산에서 저주받은 자는 오직 뱀과 인간일 뿐, 결코 이 세상 뭇 생명체들이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 추방된 자가 추방되지 않은, 이미 이타적이고 조화로운 에덴동산의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는 것인가. 이 땅이 저주받은 것은 선악을 아는 인간으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명과학과 중에서,   우희종 지음,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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