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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존재

우파와 좌파의 감정 변화

"잘 놀라면 우파, 놀라는 반응이 느리면 자유주의자"

 

2006년 미국 뉴욕대 심리학자 존 조스트는 계간지 '기초 및 응용 사회심리학(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제4호에 생물학적 조건이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스트는 2001년 9·11테러 공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적 신조의 변화 여부를 조사했다.

 

실험대상자들은 민주당원과 무소속마저 9·11테러 이후 자유주의로부터 발을 빼고 보수주의로 전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나서 폭력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된 결과로 분석되었다. 보수주의로 돌아선 사람들은 테러를 군사적으로 보복하고 싶은 욕망, 종교와 애국심에 대한 새로운 관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자유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정치적으로 우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스트의 연구결과는 존 앨퍼드에 의해 재확인됐다. 2008년 '사이언스' 9월 19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앨퍼드는 강력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보통사람 46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위협을 느낄 때의 생리적 변화와 정치적 견해 사이에 관련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험은 두 가지로 진행됐다. 하나는 위협적인 그림, 가령 얼굴에 거미가 기어 다니거나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피부에서 전류가 얼마나 쉽게 흐르는지를 측정했다. 다른 하나는 실험대상자의 눈 아래 근육에 센서를 달아놓고 갑자기 큰 소음이 들릴 때 얼마나 자주 눈을 깜박거리는지 기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피부에 전류가 쉽게 전도되고 두 번째 실험에서 남보다 눈을 격렬하게 깜박거린 사람들, 다시 말해 겁을 잘 먹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나타낸 사람들은 미국 보수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이라크전쟁·군비 증강·사형제도를 지지한 반면에 동성 결혼·임신 중절·해외 원조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한편 놀라는 반응이 느린 사람들은 자유주의 노선을 신봉했다. 여러분도 놀라는 정도에 따라 우파인지 좌파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장 (조선일보, 200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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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흥미로운 연구 결과이다.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얼마 전에도 발표된 적이 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보수주의자 이고, 화를 참을 줄 아는 사람은 진보주의자 라는 것이다.  두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잘 놀라고, 화를 잘 내고 감정 변화가 빠르면 '보수'쪽에 가깝고, 화를 잘 내지 않고 감정 변화가 느리면 '진보'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뒤집어 보면 화를 잘 내고, 잘 놀란다는 것은 자신의 '고정관념' 즉 불교에서 말하는 '아집(我執)'이 강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이 감정 변화가 느리고 화를 잘 내지 않느다는 것은 그만큼 아집이 없고, 아집이 없으므로 열린 생각으로 남의 의견을 잘 받아준다는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옛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흔들며 데모하는 할아버지들을 보면  이 연구 결과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