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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존재

느림의 철학자, 거북

동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과 비교하면 매우 단순하다. 굳이 삶의 질을 따진다면 먹이를 좀 더 쉽게 구하고, 적의 위험에서 벗어나 얼마나 편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느냐는 정도다. 그들이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면, 고도의 두뇌를 가진 인간이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 특히 거북이 살아가는 방법은 ‘느림의 문화’를 일찍이 터득한 것 같다.

거북은 파충류에 속하며 300종 가까이 존재한다. 육상과 수중에서 생활하며 거의 평생 동안 성장한다. 거북은 외부의 온도가 높아지면 체온이 올라가고, 외부 온도가 떨어지면 체온이 내려가는 변온동물이다. 변온동물은 체온이 올라야 활동과 대사가 원활하기 때문에 체온을 올리기 위해 열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거북의 신체구조를 살펴보면 다른 동물에 비해 잘난 부분이 거의 없다. 몸통은 딱딱한 등딱지와 배딱지로 둘러싸여 생김새도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딱딱한 껍데기는 강한 외적을 만났을 때 머리와 사지를 숨길 수 있는 방어막이 되어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거북은 피모, 깃털, 유선도 없다. 체강의 좁은 공간에 내부 장기들은 겹겹으로 틈도 없이 배열되어 있다. 내부 장기를 보면 횡격막이 없는데도 체벽이 도와주어 호흡하는 데 무리가 없다. 심장은 다른 동물처럼 4개의 분방이 아닌 3개의 분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혈액순환에 문제가 없다. 행동만 답답할 정도로 느린 것이 아니라 먹는 것도 느리다. 호흡도 느리고 심박도 느리다. 신체의 대사활동도 다른 동물에 비해 5배 정도 느리다. 이 때문에 아픈 증상을 호소한다면 이미 경과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는 것이고, 아플 때는 약을 투여해도 약효가 발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한다. 수술을 할 경우에도 마취가 각성하는 데 오래 걸리고, 봉합 후 봉합사를 제거하는 기간도 일반 동물에서는 보통 1주일이면 충분한데 거북은 5주 이상 소요된다.

그런데 이러한 거북이 동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외부의 온도에 따라 체온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주변의 여건을 탓하지 않고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행동이 느리고, 신체의 대사작용이 느린 것은 ‘빨리빨리’보다는 ‘천천히’ 문화의 장점을 이미 알고 즐기는 것 같다. 음식을 느리게 먹고 채식 위주로 소식하는 것은 현대인의 건강에 기본이 된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내부 장기와 외모의 부족함에도 다른 동물보다 오래 사는 것은 천부적인 요소보다는 모자람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최선임을 보여준다. 평생 동안 성장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거북이 살아가는 방식은 인간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거북은 이렇게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주어진 환경에서 잘 적응하면서 그들의 세상을 슬기롭게 열어가고 있다.

좋은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좋은 언어를 가지고도 소통을 제대로 못하며, 남의 탓을 잘하는 우리를 보면 거북은 뭐라 할까? “정말로 답답하다”는 답이 나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신남식 서울대 교수·수의학/중앙일보 (2009.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