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서의 언어는 객관적 진술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다. 고백의 언어를 객관적 진술로 읽는 한, 그 지독한 배타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
성서, 특히 구약성서에는 세 가지 기록 양식이 있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다. 신화와 전설을 묶어서 '설화'라고 하는데, 이 세가지 기록 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성서의 진실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하다.
3.
일부 보수적인 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창세기 1 ~ 12장까지를 '신화'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앞부분의 서술은 '사실'로 이해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의 기록에 대해 갖는 의문들이 있다. "하느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느냐?", "가인이 만난 사람이 누구냐?", "창세기 인물들이 실제로 몇백 년씩 살았느냐?" 이러한 질문은 창세기 기록을 모두 사실로, 역사로 인정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창세기의 앞부분은 '신화'의 기록이지'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4.
성서 속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신화의 원형인 <길가메쉬 서사시>는, 주인공 길가메쉬가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다.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가' 혹은 '영생의 세계가 있는가'와 같은 인생 근원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홍수 설화, 즉 '노아의 홍수' 원형이 되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대홍수 사건은 실제로 여러 차례 일어났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입으로, 입으로 구전되어 후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홍수 설화'가 탄생되었으리라. 그렇다면 홍수 설화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길가메수 서사시>로부터 파생된 신화라는 해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폭넓게 지지받고 있는 학설이다.
길가메쉬는 여행 중에 우트나피쉬팀(노아에 해당하는 인물)을 통해 홍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길가메쉬 서사시>에 삽화처럼 등장한다. 이 수메르 신화는(수메르족은 앗수르, 바렐론,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셈족 이전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았던 민족) 그대로 셈족 신화에 이어져 여러 단편들로 존재하다가, 남왕국 유대의 멸망(BC 586년) 이후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지식층에 전해지게 되었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 유대 지식인들은 '민족 신' 개념에 머물러 있던 자신들의 야훼 신앙을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를 통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섭리하는 유일신 사상으로 발전시키게 되었고, 더불어 '노아 홍수' 이야기의 원형인 <길가메쉬 서사시>를 야훼 신앙 체계 안에 편입하여, 성서에 '노아 홍수' 설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유대 지식인, 종교 지도자들은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점령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원시적 야훼 신앙에 대한 일종의 종교개혁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는 유대교(Judaism)의 탄생이 되었다.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민족과 종교의 기원을 기원전 2000년경의 아브라함에 두고 있지만, 진정한 주다이즘(Judaism)은 사상적으로 기원전 5세기경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물론 당시로서는 앞선 문명이었던 페르시아의 종교 천재 자라투스트라와 그가 창시한 종교(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따라서 '성서는 여러 문명의 이야기를 짜집기한 위서'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옳은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현재 세계 종교로 존재하는 고등 종교들 역시 그 뿌리는 원시 민간신앙에서부터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문화로부터 단절되어 '나 홀로' 존재하는 종교는 없다. 기독교 역시 그런 연계 속에서 태동된 것이고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기독교 성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특별하고 유일한 종교라고 주장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교리적 아집이 타문화, 타종교에 대한 배타로, 배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중에서, 류상태 지음/삼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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