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유대교의 창시자를 모세(Moses)라 한다. 물론 유대교 학자들이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중에 극 보수주의자가 아닌 이상 모세를 실제 역사적 인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전통적으로 모세를 ‘모세 오경(五經, Pentateuch)’의 저자라 보기도 하지만 이것도 물론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이라 보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모세가 역사적으로 실재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가 역사적 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가 이끌었다고 하는 ‘출애굽(Exodus)’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지켜온 신앙의 초석이 되었다고 하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이름에 얽힌 사건과 그가 전했다고 하는 가르침을 살펴보기로 한다.
모세의 이야기는 유대인 성경 둘째 책인 「출애굽기」에 나온다. 한 가지 지나가면서 언급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경전을 ‘구약’이라 칭하지만, 유대인들 앞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전을 ‘구약’이라 하는 것은 실례다. 요즘은 대부분 ‘히브리어 성경(Hebrew Bible)’이라 하든가 유대인들처럼 ‘타나크’라 부른다.
애굽서 노역 시달리던 동족 구해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를 역사와 연관시킬 경우 모세를 전통적으로 기원전 13세기 사람으로 본다. 모세 당시 히브리인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노예들의 인구 증가가 급격해지자 이집트 당국은 노예들이 침략군과 합세할 경우를 염려해서 노예들의 인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히브리 노예들이 낳는 아이들 중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모세의 부모도 모세를 낳고 3개월간 숨겼지만 아기 울음소리가 커지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아기를 물이 새지 않을 바구니에 담아 나일 강 갈대 사이에 띠웠다. 마침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이 밤에 강가로 목욕하러 나왔다가 아기를 발견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기의 누나가 달려와 공주에게 유모가 필요하냐고 묻고, 아기의 어머니를 소개했다.
아기는 어머니를 유모로 하여 어느 정도 자란 다음 정식으로 공주의 양아들이 되었다. 공주는 아기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건져내었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다. 모세가 어른이 된 후, 하루는 어느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였다. 다음 날 두 히브리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동포끼리 싸우지 말라고 하자 그 중 하나가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 하는가”하고 대들었다. 이에 자기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 났음을 감지했다. 바로가 이 사실을 알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 모세는 도망하여 동쪽으로 홍해를 건너 미디안 광야로 피신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집에서 양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 아들을 낳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집트에서 계속되던 피라미드나 궁전을 짓는 거대한 토목공사에 동원되던 히브리인 노예들의 고역이 극심하였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였다고 한다. 이에 하느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광야에서 목자로 일하고 있던 모세에게 이집트로 내려가 고통당하는 그의 동족을 구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했다.
모세는 내키지 않는 마음이었지만 자기의 형 아론과 함께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가서 히브리 백성들을 놓아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토목공사에 필요한 인력을 그냥 놓아줄 수는 없었다. 그러자 나일 강은 물론 이집트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게 하는 일, 이집트의 왕태자 등 처음 난 모든 것을 죽게 하는 일 등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야훼의 능력을 보인 후 가까스로 허락을 받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홍해가 갈라지는 등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넜지만 그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곧장 들어갈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이미 다른 족속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계명 받아 종교 신앙 윤리 확립
어쩔 수 없이 시내 광야에서 야훼 신이 내려 주는 만나를 받아먹으면서 ‘40년’을 헤매게 되었다. 출애굽 1세대에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약속한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모세마저 산 위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만 보았을 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출애굽’ 기간 동안 이런 저런 시련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은 몸에 배인 노예근성을 씻어내고 다음 세대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 훈련을 쌓은 셈이다.
더욱이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기들이야 말로 신이 특별히 선택한 백성이라는 ‘선민(選民)’ 의식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또 이 기간 모세가 시내 산꼭대기에 올라가 야훼 신으로부터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직접 받았다. 결국 모세를 매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국가, 새로운 종교, 새로운 신앙의식을 확립하게 된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모세 오경이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다른 전통에서 내려오던 고대 문헌들이 후대에 짜깁기 식으로 합해져서 이루어진 문헌이라 할지라도, 모세의 이름과 연결되어 기록된 그 내용은 유대교 전통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에서도 이를 자기들의 전통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 모세 오경에 있는 기본 가르침 몇 가지를 살펴본다.
야훼는 인간에 개입하는 인격신
첫째, 새로운 신관이다. 「출애굽기」의 기록에 따르면, 모세 이전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만 알려졌던 신이 이제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신에게 모세가 그의 이름을 물으니 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다. 그 이름이 ‘야훼’다. ‘스스로 있는 자’ 혹은 ‘있음을 있게 하는 자’라는 뜻으로 풀 수 있다. 이것이 유대인들만 사용하는 신의 고유명사가 된 셈이다.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전통 때문에 이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야훼’라는 이름 대신 ‘아도나이(주님)’이라 불렀다.
야훼 신은 주변 다른 민족들이 모시던 토지 신, 태양 신 등의 자연신과 달랐다.
야훼 신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역사에 직접 개입하는 인격신이었다. 히브리인들을 추격해 오는 이집트 군대를 물속에 사장시키고 다른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이기도록 해주는 등 군사적 전술이나 전쟁에도 능한 힘 있는 신이었다. 유대교가 야훼 신을 역사의 신으로 보고, 자기들의 역사를 야훼신의 ‘구원사’로 보는 초석이 이 때 심어졌던 셈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일반적으로 유대교 신관을 ‘윤리적 유일신관(ethical monotheism)’이라 하지만 모세 오경에 나타나는 신관을 엄격하게 유일신관이라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 신만을 따르기로 약속했지만, 다른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십계명에도 ‘다른 신’에 대한 언급이 있고, 백성들도 자기들이 약속을 어기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모세 당시의 신관은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한 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단일신론(henotheism)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둘째, 십계명의 등장이다. 십계명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야훼 신의 명령이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요약해 보면 1,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라. 2,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3,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 하지 말라. 9,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탐내지 말라 하는 것이다.
처음 네 가지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다음 여섯 가지는 인간 자신들 사이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신이 인간에게 인간관계에서 윤리적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언약 개념이다. 야훼 신은 모세에게 준 십계명이나 기타 법령을 통해 자기의 뜻을 밝히고 그의 백성들이 이를 충실히 지키면 그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축복을 내려 주기로 약속하고 이에 백성들은 “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리이다.”(출24:3)하여 그 약속을 받아들였다. 소를 잡아 피로 그 ‘언약(covenant)’을 인준하는 예식도 거행했다. 신을 이렇게 일종의 ‘계약관계’로 파악하고, 그에 대한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하는 것을 종교 생활의 근간처럼 중요시했다는 것은 후대 유대교가 자칫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 보는 율법주의적 종교가 될 소지를 제공하는 대목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넷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나 여행을 계속하며 이리 저리 다니게 됨에 따라 신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다. 이런 필요에서 생긴 것이 ‘성막(聖幕)’이었다. 야훼 신을 모시기 위해 특별한 지시에 따라 세워진 성스러운 천막이었다. 백성들이 장막을 옮길 때마다 그 가운데 성막을 치고 신을 모셨다. 성막에는 십계명을 담은 법궤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적과 싸울 때 이 법궤를 가지고 가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가지고 다녔다. 성막도 거룩하지만 법궤는 더욱 거룩하여 제사장 이외의 사람이 만지면 죽을 정도였다.
신을 일종의 계약 관계로 파악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모세가 이끌었던 출애굽 사건은 실로 유대교의 시발점이자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교 경전은 계속하여 하느님을 지칭할 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 표현하고 유대교의 유월절 등 큰 명절은 거의 다 이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창세기」도 출애굽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나 그가 이끈 출애굽의 역사성 문제를 떠나서 ‘모세’라는 인물을 유대교의 초석을 놓은 유대교의 창시자라 보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법보신문, 2009.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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