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신문에 게재되는 ‘부고’를 보면 법관 출신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장수하는 것 같다. 대부분 80대를 넘기고 90대에 별세하시는 분들이 많다. 스님들도 오래 사시는 편이라고 하지만 법관 출신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스님들의 경우에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채식을 하며 산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정기적인 건강 검진 등 현대 의학의 혜택을 받는 분이 적어 자연 수명만을 누리는 까닭일 것이다.
법관 출신들이 장수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명예, 권력, 돈 등 미래가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정치인이나 기업가들 처럼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남에게 간섭 받지 않고 오직 법률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만 하면 되고 퇴직을 하더라도 그때는 변호사로서 판사시절 보다 더 많은 수입이 보장되니 어디 고민할 인생이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몸 건강 유지하고 자식 교육 잘 시키면 될 것이다.
오늘 신문에서 ‘인혁당’ 사건의 판결을 맡았던 판사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분도 90세를 넘게 사셨고 자식들도 모두 의사로 훌륭히 키웠다. 자식들 잘 키우고 천수를 누렸으니 행복한 인생을 살고 가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 판사의 잘 못된 판결에 의해 사형을 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국가는 작년에 그 당시 판결이 잘 못된 점을 인정하고 배상을 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이미 죽임을 당한 그 사람들의 소중한 생명을 다시 살릴 수는 없는 것이고, 30년 넘게 말로 다하지 못하는 고통을 당한 그 가족에게는 어떻게 보상이 된다는 말인가?
전 국민이 반공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빨갱이라면 모두들 찢어 죽여야 한다고 믿고 있던 시절에 그들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빨갱이 자식’ 이라는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동네 아이들에게 새끼줄로 묶여 끌려 다니며 놀림을 당했다고 하니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며 30년을 넘게 살아 온 ‘아내’와 '어머니’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왔기에, 그 자체가 역사가 되어 후손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주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인생이란 무엇인가? 너무 허무하다. 아무리 신의 뜻이 하늘에 있고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하여도 선량한 사람들이 핍박을 받고 남에게 고통을 준 기회주의자들이 천수를 누리고 잘 사는 것을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이제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도, 잘못된 사형 판결을 받아 죽임을 당한 사람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저 세상에서 서로 만날 것이다. 만나거든 과거세(過去世)의 악연을 끊고 서로 해원상생(解怨相生) 하기를 기원한다.
2008. 3. 6
# 2.
2010.10.12일자 신문에 ○○○ 대법관의 부고가 게재되었다. 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975년 4월 '사법 살인'으로 불린 인혁당 사건 판결에 배석했던 ○○○ 전 대법관이11일 오후 2시5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68~81년 13년 2개월 동안 최장수 선거관리 위원장에 이어 88년까지 헌법위원장을 지냈다. 대법원 판사 시절인 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여한 13명 가운데 한명으로 주도자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유족으로는 ..............가 있다."
이분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1942년에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총독부 판사를 지냈다. 92세의 천수를 누리셨는데, 70세까지 대법관, 헌법위원장으로 활동하시고, 자식들도 모두 훌륭히 키우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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