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올 봄 을지로에 나갔다가 낮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길에서 구걸을 생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1990년도 이니, 벌써 18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18년 동안 구걸을 해서 살아온 셈이다.
그는 정신장애가 있지만 어느 정상적인 사람 보다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18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덧 수염도 나고 까칠해 보였다. 얼굴에서 지난 세월의 힘든 삶이 그대로 나타나 보였다.
아무리 구걸이라 하지만 한 곳에서 18년 동안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구걸 행위는 매우 적극적이다. 길거리 사람들이 자기 앞 지나 갈 때, 호소하는 듯한 애걸하는 팔동작과 함께 분명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큰 소리를 내지르며, 시선이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따라가며 구걸을 한다.
애걸하는 소리와 행동이 어찌나 애절한지 지나고 나서도 한 참은 그 목소리가 귀에 맴돌곤 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생업활동을 하는 그에게 몇 번 조그만 자선을 베푼 적이 있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는 직원의 말로는 아침이면 누군가 봉고차로 그를 태워와서 내려 놓고, 우유 한 봉지와 빵 하나를 주고는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밤이면 다시 와서 태워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앵벌이'로서 하루에 빵 한개, 우유 한 봉지를 받고서는 종일토록 목이 터져라 구걸을 해서 정상적인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봉고차를 몰고 온 사람들에게는 앵벌이가 그들의 사업인 셈이다.
힘들여 일하지 않고서도 남이 구걸한 돈으로 손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2
2002년 어느 날, 선배의 가게를 방문하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고 있는데 바로 앞 가게에서 간판을 새로 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배의 말로는 원래 식당이 있었는데 장사가 안되어서 다른 사람이 인수하여 지금 간판을 바꾸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러면서 IMF 이후에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업종이 '간판 광고업'이라 한다. 자고 나면 이곳 저곳에서 간판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판 광고업 보다 더 안전하게 호황을 누리는 업종이 있다. 바로 '임대업' 이다.
예전에는 마담뚜에게 인기있는 사윗감으로는 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은 '임대업자 아들'이 가장 인기잇는 사윗감 후보라고 한다.
퇴직금을 털어 식당이나 자영업을 열었는데 장사가 안되어 문을 닫는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온 가족이 나와 장사를 해도 겨우 임차 월세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자영업자들이 힘들여 일해서 가게 주인에게 그달 그달 월세를 바치는 '앵벌이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물가를 잡는다며, 여기 저기에서 물가관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자장면에서 학원비까지 가이드라인을 정해 물가 인상 억제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임차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정부는 영세한 중국집 주인들에게 자장면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하기 전에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올리지 말라고 하는 편이 더 근본적인 물가관리 정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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