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가 넘쳐난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반대다. 이스라엘에서는 게이, 게즈비언끼리 결혼이 합법이다. 하지만 차별이 존재한다. 법적으로 차별은 없지만, 실질적 차별은 존재한다. 한 예로, 유대교 남성과 기독교 여성의 결혼이 불법은 아니지만 랍비가 허락하지 않는다. 게이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나는 어렸을 때 소년은 소녀를, 소녀는 소년을 좋아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소년가 아니라 소년이 좋았다.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학문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때 배운 가르침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소년이 소년을 좋아하면 구름 위의 위대한 신께서 화를 낸다고 사제와 랍비는 가르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제와 랍비가 화를 내는 것이었다. 과학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방법론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그 믿음이 실제 증거와 충돌하면 과학자는 사실을 선택해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동성애가 있다. 침팬지가 그 한 예다. 생명체의 수많은 기관에는 각각의 기능이 있다. 최초에는 그 기능만이 목적이었다. 파충류에게 털의 존재 이유는 보온이었다. 하지만 조류에 이르러 털은 비행에 활용하도록 적응하고 진화했다. 손가락은 처음에 영장류가 나무에 오르기 위해 존재했다. 지금 인간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친다. 영장류의 섹스는 처음에 번식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우정과 친밀감 구축,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섹스를 한다. 인간의 섹스 역시 마찬가지다.
신은 인간의 신체 기관이 각각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사용하면 비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생물학은 말해 준다. 실제로는 자연선택, 그리고 적응과 진화가 있을 뿐이다. 나는 과학자다. 과학은 내가 내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도록 도왔고, 내 성적 정체성은 나를 과학적 진실과 허구를 더 엄격히 구분하는 과학자로 이끌었다.
유발 하라리를 과학자로 이끈 도구가 하나 더 있다. 명상이다. 하라리는 여러 자리에서 자신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쓸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명상을 고백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위파사나 명상, '자신만의 질문'을 찾기 위한 집중력 강화의 도구이기도 했다. 초기 불교 경전어인 팔리어를 음역한 위파사나는 꿰뚫어봄, 통찰 정도의 의미로 옮길 수 있다. 그는 새벽에 한 시간, 자기 전에 한 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 매일 명상하고, 1년에 한 번은 아예 모든 것을 끊고 한두 달을 캠프에 들어가 피정 수련을 한다고 했다. 24세부터 실천했던 수련, 지난 겨울에는 인도에 있는 명상 캠프에서 두 달을 보냈다고 한다.
내가 명상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은 종교적인 명상을 먼저 떠올린다. 특정 종교와는 전혀 관계없다. 나는 개별 종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
10대 시절, 나는 말썽장이였고, 늘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였다. 세계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삶의 이미가 궁금했다. 주변에서는신앙을 가지고 신화를 읽으라고 했다. 구름 위의 신, 이스라엘 건국 신화, 낭만적인 사랑을 다룬 소설, 소비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자본주의 신화를 모두 찾아 읽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픽션이라는 걸 알 정도로는 똑똑했지만, 그다음 인생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역사가 해답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대학에 갓지만, 곧 실망했다. 학문의 방법론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를 구분하게 해 주는 강력한 도구를 내게 줬지만, 역시 삶의 의미에 대한 대답은 주지 않았다. 소위 빅퀘스천(big question)에 대한 해답은 거기에 없었다.
2000년 봄 처음으로 10일짜리 피정을 갔다. 내가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나는 것을 깨달은 열흘이었다. 나는 명상이 어떤 신비한 수련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명상은 완전히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는 눈을 감고 오직 자신이 쉬는 숨에만 집중하라고 배운다. 콧구멍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숨에만 집중하라.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라. 그 순간을 관찰하라. 그런데 8초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금방 딴생각이 났다. 경악이었다. 나는 단 10초도 집중 못 하는 존재구나. 나라는 존재는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내가 냐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단지 문지지기였을 뿐이다. 눈이 확 떠지는 체험이었다.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내가 죽으면 나는 사라지나? 나는 천국에 가나? 나는 환생하나? 이 질문들에는 전제가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나'의 존재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체는매 순간 변하고, 뇌도 그렇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명상 수련을 통해 내가 깨달은 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 (諸法無我).
숨 집중이 끝나면 다음 단계는 감각에 대한 집중이다. 환각 체험이 아니다. 뜨거운가 차가운가 아픈가 등에 대한 일상의 감각. 우리 감각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불쾌한 감각을 경험하면 마음도 불쾌해지고, 쾌감을 경험하면 마음은 그 감각을 더 원한다. 내가 지금까지 1만 번 이상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지만, 그떄마다 나를 화나게 한 대상에게만 화를 냈다. 내 안의 어떤 감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분노를 없애려면, 나를 바꿔야 했다. 죽은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고? 진정한 삶의 수수께끼는 죽은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문슨 일이 벌어지는 가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내 감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같은 사람도 매 순간 달라지는데, 모든 사람이 어찌 같겠나. 깨달음의 방법도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ㅏㄷ. 하지만 위파사나 명상이 내게는 고마운 은총이었다. 다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서명상 수련을 하는 게 아니다. 명상은 어떤 목적도 없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적이다. 실재(reality)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수련이 명상이다.
유발 노이 하라리
1976년 이스라엘 하이파 출생,
2002년 옥스퍼드 대학 박사 , 2014년 '사피엔스' 출간, 2016년 '호모 데우스' 출간, 2018년 다보스포럼 기조 연설, 현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
2018. 8. 11.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중에서
'책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환의 시대 (0) | 2019.03.08 |
---|---|
토마스 페인, 이성의 시대 (0) | 2019.02.24 |
소로우의 일기 (0) | 2017.10.03 |
진실과 거짓, 인물 한국사 (0) | 2017.09.04 |
철학, 인간을 답하다 (0) | 2017.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