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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

종교애 대한 생각

어느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신의 섭리를 느꼈다고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믿음이 강한 어느 역도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혼자 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대회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역시,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내가 연습한 만큼의 결과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세상에는 전쟁, 폭력, 불치병, 가난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일이 잘 되면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이 잘 안 되면 시련을 주신다고 말한다.


이들은 병이 치료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게 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은 혹독한 고난을 치렀다.

근세에 와서도 일제 35년 강압 통치, 태평양전쟁 강제 징병과 징용, 나이 어린 소녀들의 위안부 동원

그리고 민족의 분단과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분단의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 핏줄 부모형제가 전쟁으로 헤이진 후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처참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통해 영광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영광(?)을 위해 이유도 없이 무참하게 고통을 받고 죽어간 수백만 명의 사람은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을 직접 심판하지 않고 왜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회개하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부자는 하늘나라에 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개신교 신자들은 하늘나라(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죽으면 교회에서 목사가 천국으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예전처럼 '장례 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교회에서 '천국 환송 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 아닌가?

그런데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인간인 목사가 정하다니, 참으로 황당하고 무례한 일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이 자신을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고, 또 기대한다.

교회에서 목사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성공하고, 병을 고쳐주고, 죽어서도 천당 간다고 설교한다.

그런데 신을 믿으면 복을 준다는 것은 과연 실증적으로 확인된 진실인가?


우리 주변에서는 신을 믿든 안 믿든 누구에게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쳐서 온다.

독실한 신자, 성직자들에게도 뜻하지 않는 불행이 닥치고 불치의 병에 걸리기도 한다.

적어도 수학적 통계로 분석해 보면 신을 믿으면 복을 준다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18~19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일찌기 깨달은 것들이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에 지진이 발생하여 50만 명에서 100만영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볼테르는 이러한 비극을 목격하고 경악했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중요한 축제인 만성절 기념 미사에 참석하느라 교회에 있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볼테르는 신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창조 순간에 정한 자연법칙에 따라 정의로운 사람이나 정의롭지 못한 사람, 

충실한 사람이나 불성실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소멸하게 만든다는 자신의 지론을 재확인하였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일찍이 신의 존재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도덕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는 감정이 없으며 의식도 없고, 만물에 대하여 이른바 인자하다거나 편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순전히 만물이 스스로 움직여 변화하고 스스로 생멸하는 데 맡겨두고 있다.  


하늘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데 

하늘이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 만물을 죽이이는 것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운동 변화하는 법칙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덕경 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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